금강산(金剛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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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金剛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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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금강’이란 금속처럼 굳고 빛나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지난날 중들이 먼 곳에서 바라보면 굳은 바위벼랑들이 햇빛에 빛나는 것이 금으로 만든 산을 연상케 한다고 하여 『화엄경』에 나오는 ‘금강산’과 결부시켜 이 산을 ‘금강’이라 명명하였다.

지난 날 금강산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여름이면 산봉우리와 층암절벽에 흰 구름이 감돌고 산에는 녹음으로 울창하며 갖가지 아름다운 새소리와 요란한 폭포소리로 조화를 이룬다 하여 ‘봉래산(蓬萊山)’, 가을이면 온 산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불타고 벽계수가 흐른다 하여 ‘풍악산(楓岳山)’, 겨울이면 온 산이 눈꽃과 ※※기둥으로 덮여 특이한 경치를 이룬다 하여 ‘개골산(皆骨山)’이라고 하였다.

또한 새하얀 멧부리가 서릿발처럼 날카롭다 하여 ‘상악산(霜岳山)’, 하늘나라의 신선들이 하계하는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선산(仙山)’, 산이 아름답고 신비하여 무아경에 빠지게 한다 하여 불교용어로 ‘열반산(涅槃山)’이라고 하였다.

이밖에 ‘기달(怾怛)’, ‘중향성(衆香城)’이라고도 하였는데, 이것은 불교용어에서 따온 것으로서 금강산에서 거주하던 중들이 금강산을 부처와 연결시키면서 지은 이름이다.

지난날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 선조들 속에서는 신선사상, 하늘숭배사상이 지배적이어서 이 산을 신선과 결부시켜 ‘선산’이라고도 불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점차 봉래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것이 정착된 것은 15~16세기 말이다.

이상의 여러 개의 지명 가운데서 중세기에 가장 많이 쓰인 것이 금강산이다. 일찌기 ‘풍악’, ‘개골’은 금강산의 가을과 겨울 경치를 반영한 이름으로 널리 쓰였고 17세기경부터는 ‘봉래’(쑥이 무성하다는 뜻)라는 이름은 여름철의 금강산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쓰였다. 그에 따라 ‘금강’은 봄철의 금강산을 가리키는 말로 되었다. 금강산은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외금강지역, 내금강지역, 해금강지역 등 세 개의 큰 명승지구로 나눈다.

금강산에는 8만9암자가 있다고 전해지는 것처럼 옛 건축물이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옛 문헌에는 180여 개의 암자이름이 기록되어 있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08개의 절이 있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금강산의 유적유물에서 산성이나 옛 무덤 그리고 일부 공예, 조각품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불교와 관련되어 있다. 그것은 5~6세기 이후 불교가 오랫동안 북한의 주도사상의 하나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불교교리의 전파수단으로 많은 조형물을 건축하고 이용해 왔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금강산 유점사(楡岾寺) 53존불의 일부 조각상과 금장암(金藏庵) 사자탑 안에 있던 금부처, 표훈사(表訓寺)의 53부처가 새겨진 불탑 등 수많은 문화재들을 약탈해갔다. 6·25전쟁시기 유점사, 장안사(長安寺), 신계사(神溪寺), 정양사(正陽寺), 표훈사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유물들이 소각되었다.

1949년에 창설되었던 ‘금강산특수박물관’(신계사에 설치)도 이때 모두 불타고 파괴되었다. 표훈사는 내금강의 절경으로 되는 만천구역의 표훈동에 위치해 있다. 이는 금강산에 보존되어 있는 4대사찰 중의 하나로 된다. 670년에 처음 세웠고 그 후 여러 차례 재건, 중수를 거쳤는데, 현재 건물은 1778년에 중축한 것이다. 원래 20여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반야보전, 영산전, 명부전, 능파루, 어실각 등 7개만 남아 있다. 표훈사에는 15층탑이 있었는데, 외적들의 파괴로 지금은 없어졌다. 표훈사로 가는 길에 삼불암(三佛巖)이라는 바위가 있는데, 석가불상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미륵불, 왼쪽에 아미타불이 부조되어 있다.

여기서 멀지 않은 백화암(白華庵)터에는 서산대사비(西山大師碑)를 비롯한 여러 비(碑)와 서산대사부도(西山大師浮圖) 등 부도가 있다. 정양사는 표훈사 뒤 방광대(放光臺) 산허리에 위치해 있다. 정양사라는 이름은 이 건물이 명산의 정맥에 있고 방광대의 정남에 놓인데서 비롯되었다. 금강산지구 지역은 내금강에서도 전망이 좋은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보덕암은 내금강 만폭구역 팔담의 하나인 분설담 옆에 위치해 있는데, 북한의 옛 건물 중에서 황해남도 장수산(長壽山)의 현암(玄巖)과 함께 특이한 구조로서 널리 알려졌다. 묘길상(妙吉祥)은 내금강 백운대구역의 화개동(花開洞)에 위치해 있다. 고려시대의 조각으로서 북한에서 바위에 새긴 조각 중에서 가장 크다.

묘길상 주변에 있는 불지암(佛地庵)은 앞면 6간, 옆면 3간의 합각식건물로서 앞면간수가 일반건물의 규범을 벗어나 우수로 되어 있는 것과 조각장식이 특별히 많은 것이 아주 특이하다. 장안사는 내금강의 입구에 위치해 있었으며 금강산 4대사찰의 하나였다.

515년에 처음 지었고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는데, 1951년까지 있던 건물들은 대부분 18세기 전반기에 고쳐 지은 것이었다. 1951년에 폭격으로 불타버리고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다. 여기에는 5층탑과 무경당령운부도를 비롯한 탑과 부도들이 있었다. 신계사는 외금강 신계천 기슭에 위치해 있었다. 519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대부분의 건물은 1597년에 세운 것이었다.

1951년에 폭격으로 이 건물들도 모두 불타 없어졌다. 유점사는 외금강 은선대구역의 용천 기슭에 위치해 있었다. 금강산의 4대사찰 중에서 가장 컸으며 1911년 이후에는 이미 강원도 내에 60여 개의 작은 사찰을 가진 거찰로 있었다.

6·25전쟁시기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금강산에는 탐승객들을 위한 전망대, 놀이터, 휴식처로 이용되는 누정도 많았으나 6·25전쟁시기 폭격으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이밖에 금강산에는 탑, 다리, 비돌과 부도들이 적지 않게 분포되어 있으며 옛 성터들과 옛 무덤떼들도 많다.

금강산이 웅장하고 절묘한 자연경관을 소유하게 된 것은 이 지대의 독특한 지질 및 지형 발달역사와 관련되어 있다. 이 일대의 지질은 시생대 편마암과 혼성암류, 중생대 흑운모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본 형태는 제3기 중신세 말에 있은 비대칭적인 궁륭상륭기운동(경동지괴운동)에 의하여 형성되었으며 서부지역보다 동부지역이 훨씬 융기되었다하여 금강산의 동쪽 경사면은 1,000m 이상의 단층면에 뚜렷한 3개의 구조계단을 비롯한 여러 개의 계단으로 되었으나 서쪽 경사면은 완경사를 이룬 느린 계단상지괴로 이루어졌다.

이와 함께 암장이 바위로 되고 구조운동의 영향을 받는 과정에 파열면, 균열면, 절리면이 가로세로 발달하였으며 그것이 장기간 풍화작용과 침식작용을 받아 절벽과 계곡, 천태만상의 봉우리와 판모양, 각추모양, 모난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돌기둥, 기암괴석들을 형성하여 기묘한 절경을 이루었다.

해금강에는 동해의 해식작용과 퇴적작용을 받아 형성된 해만물상, 바다벼랑, 바위섬과 호수, 모래불, 벌들이 있다. 이처럼 금강산의 장엄하고 수려한 자연풍경은 장시간의 구조운동과 풍화작용, 침식작용, 해식작용 등 작용으로 형성되었다.

금강산에는 태백산줄기를 분수령으로 동쪽과 서쪽에 수많은 갈래로 뻗어 나간 지맥들과 깊이 패인 골짜기들이 형성되었으며 지역적 차이가 좀 있으나 경사가 급한 절벽지형을 이룬 곳이 많다. 외금강은 해안충적벌과 인접하여 있어 해발이 상대적으로 높으며 도처에 수백 m 높이의 절벽을 형성하였다.

내금강은 내륙산악지형과 인접하고 있으며 보다 느린 계단상 절벽지형을 이루고 있다. 해금강은 평탄한 해안벌을 끼고 있는 구릉성산지대로 되어 있으며 그 연해안은 기암절벽으로 되어 있다.

금강산에는 산악미를 보여주는 비로봉(毗盧峯), 관음련봉(觀音連峯), 차일봉(遮日峯), 백마봉(白馬峯), 중향성(衆香城), 채하봉(彩霞峯), 집선봉(集仙峯), 세존봉(世尊峯) 등 이름난 100여 개의 높은 산봉우리를 비롯하여 높고 낮은 산봉우리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금강산을 ‘1만2천봉’이라고 부른다.

이 산봉우리 마다에는 삼선암(三仙巖)·귀면암(鬼面巖)·토끼바위·기관차바위·수미탑(須彌塔) 등 무수한 기암괴석과 계곡들, 동해바다를 전망하기 좋은 천선대(天仙臺)·망군대(望軍臺)·백운대(白雲臺) 등 20여 개의 전망대 그리고 금강문(金剛門)·수정문(水晶門)·하늘문·비사문(毗沙門)을 비롯한 8개의 자연돌문, 금강굴(金剛窟)·보덕굴(普德窟)·발연굴(鉢淵窟)·선인굴(仙人窟)·송림굴(松林窟)·성문굴(聲聞窟)·가섭굴(迦葉窟) 등 석굴들이 있다.

이밖에 온정령(溫井嶺), 원호고개, 바깥무재령, 안무재령, 효양고개, 배재령, 개잔령, 술기넘이고개 등 수많은 고개들이 있다.

금강산에는 계곡미를 보여주는 깊고도 우아한 골짜기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외금강의 온정천(溫井川) 유역에는 온정천계곡(溫井川溪谷), 선창천(仙蒼川) 유역에는 선창계곡(仙蒼溪谷), 천불천(千佛川) 유역에는 천불계곡(千佛溪谷), 신계천(新溪川)과 그 지류유역에는 구룡연계곡(九龍淵溪谷)·선하계곡(仙霞溪谷)·영신계곡(靈神溪谷)·발연동계곡(鉢淵洞溪谷), 남강(南江) 유역에는 송림동계곡(松林洞溪谷)·용천계곡(龍川溪谷)이, 내금강의 금강천(金剛川) 상류류역에는 구성계곡(九成溪谷), 동금강천(東金剛川)과 그 지류유역에는 만폭동(萬瀑洞)과 만천계곡(萬川溪谷)·금장동계곡(金藏洞溪谷)·송라동계곡(松羅洞溪谷)·백천천(白川川) 유역에는 영원동계곡(靈源洞溪谷)·백탑동계곡(白塔洞溪谷)·태상천(太上川) 유역에는 태상계곡(太上溪谷) 등이 있다. 금강산의 계곡미에서 제일 아름다운 곳은 만폭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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